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다이와 스칼렛 (문단 편집) === 2008년 이후 === [include(틀:2008년 JRA G1 대회 우승마/간략)] 2008년 고마 시즌을 맞아 당시 세계 최고 상금대회인 [[두바이 월드컵]](G1)을 목표로 잡고 그 전초전으로 [[페브러리 스테이크스]]를 준비했다. 그러나 경주 1주일 전 조교에서 튄 우드칩이 오른쪽 눈에 맞아 상처에 의한 각막염 진단을 받고 일정을 회피하게 되었다. 이후 [[빅토리아 마일]] 혹은 [[야스다 기념]]을 목표로 한 봄 일정을 계획하고 전초전으로 오사카배를 선택한다. || [youtube(Dhy98h4V0nw)] || || 2008년 [[오사카배]] 영상 || [[오사카배]]에서는 [[메이쇼 삼손]]이나 킷카상 우승마 아사쿠사 킹스 같은 수말들을 제치고 당당히 1번 인기로 출주해 도주 승리를 거두었으나 경기에서 너무 체력을 쓴 탓에 부어버린 다리가 1주일이 지나도 낫지 않아 조교도 하지 못해 야마모토 트레이닝 센터로 가 검진을 받고 관골류가 판명되어 그대로 휴양에 들어갔다. 7월 초에 완치가 되어 가벼운 조교를 시작했고 예상보다 복귀 시점이 빨라져 9월 5일에 릿토로 돌아왔다. 당시 휴양으로 540kg대의 몸무게에 이르렀으나 조교 횟수를 늘려 2주 만에 516kg로 줄였고 천황상 경기 당일에는 498kg을 찍으며 체중 감량에 성공했다. || [youtube(YSi-4Rg1qdc)] || || 2008년 [[천황상 가을]] 영상 || [[천황상 가을]] 경기에서의 다이와 스칼렛은 평소와 달리 흥분했고 처음부터 단번에 스피드를 끌어 올렸다. 여기에 보드카와 같은 조교사 담당인 14번 인기 토센 캡틴[* 24전 4승. 2007년 [[알링턴 컵]], 2008년 [[하코다테 기념]] 우승마.](トーセンキャプテン)이 쫓아 오자 계속 하이 페이스를 진행해 결국 전반 1000m를 58.7초에 끊었다. 일찌감치 토센 캡틴이 실속한 가운데 직선 주로에서 안쪽 코스에 자리잡은 안도 카츠미 기수는 나쁜 리듬으로 달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사이 보드카와 [[딥 스카이(말)|딥 스카이]]가 쫓아왔고 [[컴퍼니(말)|컴퍼니]]와 에어 셰이디[* 37전 7승. 2008년 [[아메리칸 자키 클럽 컵]] 우승마.](エアシェイディ)도 뒤를 따랐다. 빠른 도주로 인해 여기서 실속할 것만 같았던 다이와 스칼렛이 다시 근성을 내 버티며 보드카와 결승점을 나란히 통과, 1착을 놓고 보드카와 다이와 스칼렛, 3착을 놓고 딥 스카이와 컴퍼니, 2 부문에서 사진 판정이 되는 일본 경마 역사에 남을 명장면이 펼쳐졌다. 13분간의 판정 끝에 보드카, 다이와 스칼렛, 딥 스카이, 컴퍼니의 순으로 착순이 결정되었다. 천황상 가을에서 암말의 1, 2착은 1958년 셀룰로즈[* 50전 9승. 1958년 계중사상 최우수 5세 이상 암말. 1956년 오크스 우승마 페어 만나(フエアマンナ)의 전형제다.](セルローズ), 미스 온워드[* 28전 14승. 1957년 오카상, 오크스 우승마. 1956년 최우수 3세 암말, 1957년 최우수 4세 암말.](ミスオンワード)에 이은 50년만의 기록이었다. || [youtube(bB-ymlhwe4Y)] || || 2008년 [[아리마 기념]] 영상 || [[아리마 기념]]에서는 팬투표 1위 보드카가 회피한 가운데 팬투표 2위 다이와 스칼렛은 배당 인기 1위를 받고 출주, 선두에서 레이스를 주도하며 후속 경주마들을 따돌리고 단독으로 질주해 여유있게 승리하며 37년만에 암말의 아리마 기념 승리를 완수했다. 특히 경마장 규모가 작은 카사마츠 출신으로 나카야마 경마장에 약했던 안도 카츠미 기수의 나카야마의 잔디 경주에서 첫 승리였다. 이후로도 안도 기수는 나카야마 중상은 이것이 마지막으로 통산 2승[* 이전 중상 승리는 더트 경기 [[마치 스테이크스]]이며 2002년 맘보 트위스트(マンボツイスト)로 우승했다.]에 머물렀다. 그러나 이 해 JRA상에서는 연도대표마와 최우수 4세 이상 암말에서 모두 보드카에 2위로 밀리며 수상하지 못했다. 아리마 기념 우승으로 인한 특별상 수상 여부가 전형위원회에 올랐지만 8명 중 6명이 찬성해야 수상이 가능한데 4명만이 찬성해 결국 수상에 실패했다. 2009년에는 다시 페브러리 스테이크스와 두바이 월드컵의 일정을 목표로 잡았으나 페브러리 스테이크스 1주일 전 왼쪽 앞다리에 열이 그치지 않아 회피를 결정하고 다음 날 굴건염으로 판정되면서 결국 은퇴가 결정되었다. 마주 오시로 케이조와 샤다이 팜 대표 요시다 테루야는 다이와 스칼렛으로 두바이, 영국, 미국의 원정을 기대했으나 환상으로 끝이 나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